김상훈의 낡은 수첩

나들이

시인 김상훈 2009. 1. 8. 17:40

 

좁은 땅이라고 외치면서도 마음잡아 이토록 어디 한 번 가기 쉽지 않다. 여름과 가을을 보내면서 이렇게 저렇게만 되면, 하던 일 불문곡직 잠시 접어두고 은빛으로 빛나는 겨울 따라 화천 성지 감성마을 내 한 번 다녀오리라 했건만, 가면서 민박 신세도 지고 까만 국도를 따라 바닷가를 돌아 벌거벗은 나무와 돌, 바람에게 안부도 물으려 했건만, 동해남부선은 책에 그려진 조선의 허리에서나 봐야 할 듯싶다. 그래도 마음먹기에 달린 게지, 라며 자책한다.

언제부턴가 내 고향 서울은 낯선 타인처럼 느껴진다. 후암동 계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대부분 성북구 일대를 돌며 성장했던 서울은 떠날 때의 그 아련함과 애틋함이 모두 사라졌다. 서울 토박이가 마치 부산 토박이처럼 살다보니 이도 저도 아닌 매우 어정쩡한 고향이 돼버린 지금, 하기야 고향이라고 무에 다를 게 있으랴마는 탱자나무 익어가는 그런 고향은 아닐지라도 불쑥불쑥 친구들이 보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참아야 하는 이유가 더 많은 현실의 무게가 참으로 냉혹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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