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탈 난 아이처럼 봄바람이 소란스럽다. 남단의 바람은 바닷바람과 늘 몸이 섞인 상태라 엔간한 바람은 바람처럼 여기지 않는데 나뭇가지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목련이 그적 육영수 여사의 횡사처럼 꼭 그렇게 될 것만 같아 위태위태 하게 보인다.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탓일까. 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은 목련이 아니라 건넛집 옥상, 빨랫줄에서 나부끼는 미색의 속옷이다. 요즘 자주 현실이 이완되는 현상을 느낀다. 그럴 적마다 아직 헛것이 보일 나이는 아니라며 긴 한 숨을 내쉬곤 한다.
통장 집 그녀가 그 목련을 휙 걷어간다. 원 터치로 벗고 입을 수 있는 펑퍼짐한 원피스 차림과 부스스한 머릿결 때문인지 그녀는 필경 눈곱이 마르지 않았을 성싶었다. 그 펑퍼짐한 원피스 차림은 출퇴근길의 남편을 대할 때나 더러는 마트까지 입고 다닐 것 같았고 심지어 잠자리에 들 때에도 간단하게 벗을 수 있는 편리한 옷 같았다. 설령 속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생활을 한다 쳐도 누가 알아챌 수 있으랴마는 18통 통장인 그녀가 어감상 "십팔 통"이라는 것이 싫어 극구 고사하다가 나중에 수락한 것이 19통이라나 뭐라나.
'김상훈의 낡은 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사포 (0) | 2009.04.01 |
---|---|
아아, 그날의 어신(魚神)이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0) | 2009.03.31 |
벙커 OP- 조선의 허리 (0) | 2009.03.21 |
아침 들녘,ㅡ 흔적없이 사라져갈 유리꽃이 될지라도 (0) | 2009.03.18 |
春에 엎어져 (0) | 2009.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