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오디오와 수제비

시인 김상훈 2008. 7. 29. 21:27
님이라~ 부르리까~~ 당신이라고 부르리까~~~
나 참, 아내는 하루종일 이미자 타령이다.
까치발로 살금살금 들어가 잽싸게 노래를 바꾼다.

그대~ 떠나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캬~ 좋고.... 흥얼흥얼 따라부르며 바닥에 물을 적신다.

몸풀기 삼아 간만에 바닥청소를 자처하고 나섰다.
안방과 건넌방, 거실과 부엌을 맡은 아내,
현관과 대문 계단까지 바닥청소를 맡은 나.
덤으로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까지....

" 아이참, 그렇게 찔끔찔끔 물 퍼서 언제 다 할래요?
호스로 연결해서 써야지...."

지거나 잘하지 웬 참견이람.
못 들은 척.... 쓱삭쓱삭 바닥을 문지르다.
그러다 딴은 맞을 성싶어서 옥상에 올라
물탱크에 호스를 연결하곤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잉? 근데 고 틈새 노래가 바뀌다니.... 햐, 요것 봐라.

울어라~ 여얼~풍아~ 밤이~이~ 새도오록~~ 쨔잔짠~~
아내는 반주에 맞춰 아예 쨔쟌,거리며 신이 난다.
쨔잔? 아띠, 우당탕, 빡빡, 쏴아아~~ 쓱싹쓱싹,
나는 팔에 힘을 주어 무언의 시위를 벌인다.
얼핏 안방으로 들어가는 아내 모습이 보인다.

챤스다. 열심히 하는 척,
물을 창문과 현관문에 후드득 뿌리곤
잽싸게 들어가서 이미자를 스톱시키고
다른 데크의 김광석을 다시 불러온다.
아무 노래나 on.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는~ 다암배~연기처~럼~ 큭큭....
헌데, 십 미터 남짓의 계단까지 장난이 아니다.
얼마나 청소를 안 했는지 바닥엔 연둣빛 이끼가 피어 있다.
반바지와 러닝에 땀이 배어 아프리카와 유럽이 그려진다.
아내의 얼굴이 창문으로 쑥 나오며 묻는다.

" 당신이 노래 바꿨어요? ""
"아니, 이 싸람이~ 지금 나 청소하는 거 안 보여?
땀나 죽겠구만.... "

일부러 와다다다, 물 한 번 뿌리고
괜히 무거운 화분을 쩔그럭대며 들었다 놨다 반복하다가
다시 쓱삭쓱삭.... 아내의 얼굴이 다시 쑥 들어가면서 중얼거린다.
이상하네.... 기계가 고장인가? 지멋대루네....
곧이어 데크 넘어가는 딸깍 소리가 나고,

비 오는~ 낙동가앙~에 인적 노을~ 사아라~지이면~ 우쒸....
계단어귀에서 나는 씩씩거리며 수세미질을 한다.
젠장할.... 어째 평생을 배호 아니면 이미자뿐이냐.
고개를 길게 뽑아 안의 동정을 살핀다.

걸레질로 거실을 다 훔쳤는지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나는 재빠르게 톰과 제리의 톰이 된다.
거의 발가락으로 현관을 지나 거실로 칩입,
다시 김광석을 불러낸다. 역시 아무거나 on.

집 떠나와~ 여얼차~타고~ 훈련소로~ 가~던날~~
계단청소가 마무리 되는 순간, 광석이는 외친다.
어제는 하루종일~ (왕창 중략)........ 사랑~했지만~~~!!

흐미~ 이 더운 날에....
이열치열을 내세워 아내는 수제비를 저녁으로 내놓는다.
수제비를 입에 넣고 후루룩 쩝쩝대며 나는 너스레를 떤다.

"여보, 아무래도 오디오가 고장 났나 봐." (끄끄으....^^*)


* 역시 아내가 쉬는 날이면 나는 반쯤 죽는 날이다.

'김상훈의 낡은 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운 바다  (0) 2008.07.30
억새풀  (0) 2008.07.30
이름 모를 누이에게  (0) 2008.07.29
雨中山行  (0) 2008.07.29
장대비  (0) 2008.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