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침, 장대비, 용심

시인 김상훈 2010. 7. 16. 04:17

 

#1

볼펜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연필에 침을 꾹꾹 찍어 편지를 쓰곤 했듯이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려면

침을 꼭 두어 번 발라서 우표를 붙이곤 하였다.

그러니까 편지를 쓰고 우체통에 넣을 때까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바로 침이었던 것이다.

 

생의 복판을 가로지르면서

침 같은 존재가 무수히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간과하거나 인식하고 산다.

 

#2

정오(正午)의 미열 속에서

장대비는 쏟아지는 게 아니라

분기탱천하여 하늘로 발기하고 있다.

얼마나 수컷다운가.

장대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걷는 여인을

함부로 손가락질 하지 마라.

 

#3

세상에 둘도 없이,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친구의 소식을

훨씬 덜 가까운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뭔가 괘씸하고 우울해지는 기분은 어째서일까.

그것을 용심이라고 하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