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볼펜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연필에 침을 꾹꾹 찍어 편지를 쓰곤 했듯이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려면
침을 꼭 두어 번 발라서 우표를 붙이곤 하였다.
그러니까 편지를 쓰고 우체통에 넣을 때까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바로 침이었던 것이다.
생의 복판을 가로지르면서
침 같은 존재가 무수히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간과하거나 인식하고 산다.
#2
정오(正午)의 미열 속에서
장대비는 쏟아지는 게 아니라
분기탱천하여 하늘로 발기하고 있다.
얼마나 수컷다운가.
장대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걷는 여인을
함부로 손가락질 하지 마라.
#3
세상에 둘도 없이,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친구의 소식을
훨씬 덜 가까운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뭔가 괘씸하고 우울해지는 기분은 어째서일까.
그것을 용심이라고 하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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