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현동 로터리 고가다리 밑으로 언제부터인가 노점상이 하나 둘씩 들어서더니 지금은 제법 거래가 활기찬 자그마한 재래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뿌리째 뽑은 미나리를 소쿠리에 담아 비닐 끈으로 대충 묶은 다발을 팔기 시작한 어느 할머니가 그 시장의 원조였다. 할머니가 내놓는 품목은 수시로 변했다. 그 옆으로 대형 마트가 하나 있지만, 아내는 일부러 빙 돌아서 일단 할머니한테 먼저 들리곤 했다. 됫박으로 파는 콩, 수수, 찹쌀이며 가끔 할머니가 직접 만들었다는 손두부와 메밀묵, 손수 키운 콩나물과 밭에서 일군 파를 사기 위해서였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굵은 주름이 씨줄과 날줄처럼 얼굴에 패인 할머니는 눈이 뗑그랗고 체격도 몹시 작아 연민의 정을 불러 일으키곤 했다. 그래도 언제나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파는 물건도 양이 적어 거의 일등으로 탈탈 털고 일어서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아내는 늘 할머니가 안쓰러워 일부러 팔아준다고 했다. 나는 그 옆에 서서 할머니에게 그저 꾸벅 인사나 드리는 것이 전부였는데 어느 날, 노점상 단속으로 급하게 쫓기는 할머니를 돕게 되었다. 아내는 물건을, 나는 할머니를 업고 근처 은행으로 냅다 튀었다. 생존권을 주장하며 맞서 싸우기엔 그 상황이 역부족이기 때문이었다.
워리 할머니, 자식들이 있지만 자식들이 전혀 돌보지 않는다는 할머니, 길거리에 떠돌던 개를 데려와 함께 산다는 할머니, 개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고심하다 그냥 편하게 워리라고 부른다는 할머니, 그리하여 동네에서는 워리 할머니로 통한다며 부끄럽게 웃는 할머니, 웃을 때마다 빨간 잇몸과 어금니만 달랑 보이는 할머니, 팔순을 훌쩍 넘긴지 이미 오래지만 그래도 아직 정정하다며 자랑하는 할머니, 거의 팔지도 못한 손 두부를 우리가 몽땅 사겠다고 하자 그 값으로 부득불 자장면 한 그릇을 대접하겠노라며 자장면 집에서 털어놓은 할머니의 얘기였다. 식사가 끝난 뒤, 택시로 집까지 모시겠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홰홰~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작년 추석이 다가올 무렵에 이르러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위 노점 상인들도 모른다는 말 뿐이었다. 집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할머니, 그 워리 할머니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지금이라도 어금니만 보이는 웃음을 띠우며 나타났으면 좋겠다. 아니, 안 나타나도 좋으니 건강하게 살아만 계셨으면 좋겠다. 요즘도 근처 은행을 지나치려면, 약간 구부정한 허리로 빈 소쿠리를 옆구리에 꿰고 헐렁한 치마를 펄럭이며 휘적휘적 사라지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자꾸 두 눈에 밟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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