立冬의 이마에 신열이 내린다. 엎드려 울고 있는 땅거죽 위로 이제 곧 찬 서리 내리면 인생 별 거 있냐며 순한 눈을 꿈벅이던 나목들도 지나온 생을 한꺼번에 말할 수 없음을 토로할 터이다. 나는 아직도 풀뿌리를 캐는 봄이고 비온 뒤의 청명한 여름이며 청청한 오기로 세상과 맞장을 뜨는 가을이건만, 돌아보면 모두 찰나가 아니었던가. 아아, 그러나 매년 이맘때면 입동의 이마엔 회한이라는 신열이 불쑥 또 찾아드니 년 중 행사처럼 초겨울 몸살을 앓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김상훈의 낡은 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기로 작정했던 나날들 (0) | 2008.12.08 |
---|---|
짝퉁놀이 (0) | 2008.12.05 |
어젯밤 꿈 (0) | 2008.10.28 |
배우(俳優) (0) | 2008.10.19 |
가을이 빨간 이유 (0) | 2008.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