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불혹 때 느꼈던 사랑

시인 김상훈 2007. 10. 21. 03:33
 

불혹의 나이에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세세한 감성의 빗살은 넘어가더라도

돌이켜보니, 그저 나이 값하겠다고 오로지 삶과

투쟁만 하고 살았던 같다.


지속적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고

뜨겁게 사랑하는 커플은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줄기차게 그 뜨거운 사랑을 갈구한다.

간혹, 느낄 때가 있었다.


처음 손을 잡았을 때,

처음 깊은 입맞춤을 했을 때,

처음 알몸으로 누워 있을 때,

처음에는 이런 것이 뜨거운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헌데....

생일선물로 꽃다발을 사다주니까

밤새도록 그 꽃을 껴안고 잤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몸이 몹시 아파 끙끙 앓고 있으니까

약봉지를 사들고 잔뜩 근심어린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 볼 때,


음식 값 차 값이 없어 눈치를 보자

나 화장실 간 사이 지갑을 여는 그녀를 목격했을 때,


속옷을 갈아입거나 목욕을 하면서도 부끄러워 몸을 가리고

포기 김치나 맛있는 생선 살코기를 손으로 죽죽 째서 내 밥숟갈에 얹혀 놓을 때,


[아, 사랑이란 이런 거구나]라고 느껴본 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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