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오랫동안 분신처럼 목에 걸고 다니던 목걸이가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 연극 유학을 떠났던 제자가 귀국하면서 선물로 사온 목걸이었다. 재질이 흑단(黑檀)이었던 그것은 마치 겉 표면에 동백기름을 바른 듯 윤이 났었다. 옴자가 새겨진 그것과 씻고 자고하기를 족히 십 수 년이 된 탓이리라.
어느 날 도자기 굽는 친구 가마에 엎드려 장작을 지피다 그만 일부를 태워먹었다. 묘하게 반쪽이 타버린 목걸이는 회생불능처럼 보였지만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전처럼 복원시켜 주겠노라며 며칠 후에 들리라 했다. 며칠 후에 받아본 목걸이는 정말 거짓말처럼 말짱한 모습으로 웃고 있었다.
헌데.... 기분이 참 이상했다. 분명 옛 모습 그대로 복원이 됐음에도 마음은 어딘가 허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목걸이를 유심히 살피던 나는 그 까닭을 알았다. 때에 절어 마치 동백기름을 바른 듯한 그 윤기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그날, 권주가의 열기로 가득 찬 포장마차에서 나와 목걸이는 인연을 끝냈다. 술좌석 내내 그 목걸이에 눈독을 들이던 모 여류화가가 자기 그림 한 점과 바꾸자고 했다. 큭큭큭.... 이 까짓게 뭐라고 그림과 바꾼단 말인가. 손사래를 치면서 나는 목걸이를 벗어주었다.
새로운 인연과 만나는 목걸이 입장에서 나는 그저 쇠한 인연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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