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변적 이론 vs. 실제적 이론
음악이론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크게 사변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변적인 이론은 경험이나 기술적인 것과 상관없는 순수한 사유(思維)만으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하는 반면, 실제적인 이론은 오히려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다.
그 두 이론의 기원은 모두 고대 그리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이 가운데 사변적 이론은 근세에 이르기까지의 음악이론을 지배하고 그 이후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한다: ①실제적 이론이 그 그늘에 갇혀 있다가 중세(5-14세기)의 중·후반부터 르네상스시대(15-16세기)에 걸쳐 서서히 부각되기는 하지만, 사변적 이론의 전통이 강했기 때문에 실제적 이론도 그것에 토대를 둔 것이 많다.
②바로크시대(17-18세기 중엽)에는, 작곡규범을 비롯한 실천적 이론서들이 많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합리주의·자연과학적 사고의 대두로 다시 수개념에 입각한 음악이론들이 부활하기도 한다. ③18세기 후반-19세기의 음악이론에서는 수학적 개념이 보편적으로 제거되지만, 철학적·물리학적 측면과 접목된 사변적 음악이론이 지배적이다.
④20세기에는 여러 각도에서 음악을 조망해보려는 접근방법이 새롭게 시도되나, 20세기 중엽부터는 다시 수학적·객관적 이론이 나타나기도 한다. ⑤20세기 후반에 부각되는 현상학적 음악이론은 이러 경향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되지만, 역시 사변적 음악이론으로 분류되어야 할 것들이다.
II-1. 사변적 이론
사변적 이론은 음악이론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피타고라스(기원전 6세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우주만물이 수학적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은 그는 음향도 수적 비율로 밝혀보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음정들을 수적 비율로 정의하므로써, 예술로서의 음악과는 관계없는 수학·과학으로서의 음악연구에 기초를 놓았다:
현의 길이를 1로 보았을 때를 1도로 본다면, 1/2은 8도, 2/3는 5도, 3/4은 4도. 4까지의 숫자에 국한되어 있는 그의 음정비율은 그 당시에 이 숫자가 상징했던 완전성(만물의 구성요소인 물, 불, 흙, 공기)을 그대로 반영한다("완전음정"). 피타고라스는 그 어떤 저서도 남기지 않았지만, 이런 기초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피타고라스학파 이론가(기원전 4세기경-기원 3세기경)들에 의해 기록·보완·강화되어 후세에 전달된다.
중세 초기의 보에티우스(A. M. S. Boethius, 480경-524경)는 그리스의 음악이론을 중세에 전해주는데 다리의 역할을 한 피타고라스학파의 이론가이다.
르네상스시대에는 인본주의와 관련하여 사변적 음악이론이 약화되기는 하지만, 그 명맥은 이어진다. 15세기 전반에 활동한 이태리의 우골리노 디 우르베베타노(Ugolino di Urbevetano 또는 Ugolino of Orvieto, 1380경-1457)는 음악을 이론과 실제로 나누어 르네상스이론서의 전형을 세웠는데, 이론부분에 있어서는 보에티우스의 수학적·자연과학적 이론을 포함시키므로써 사변적 이론을 부활시켰다(『음악학과에 대한 설명』Declaratio musice descipline, 1430년경).
이런 부활은 당시의 이론가들이 양극적으로 보에티우스의 이론에 대한 지지 또는 거부의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궁극적으로는 이태리의 요한네스 팅토리스(Johannes Tinctoris, 1435경-1511경)와 프란키누스 가푸리우스(Franchinus Gaffurius, 14511522)에 의해 거부쪽으로 기울게 된다. 보에티우스의 권위는 마침내 꺾이게 되지만, 16세기에도 여전히 수학에 기초한 사변적 이론과 당시의 음악적 실제를 연계하고자 하는 이론이 나타난다.
바로크시대의 사변적 이론은 독일의 천문학자·수학자인 요한 케플러(Johann Kepler, 1571-1631)의 『천체의 하모니』(Harmonices mundi, 1619)에서 잘 나타난다: 특히 제5권에서는 음들의 관계가 우주 행성들의 움직임으로부터 산출되어 있는 등 피타고라스적 사고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프랑스의 요셉 소뵈르(Joseph Sauveur, 1653-1716)의 음향연구와(배음을 발견:
『음정의 보편적 체계』Système général des intervalles des sons, 1701), 장 필립 라모(Jean Philippe Rameau, 1683-1764)의 수학적 음향학에 기초를 둔 화성이론도 마찬가지이다(『화성론』, Traité de l'harmonie, 1722). 또다른 사변적 이론으로는 감정표현의 객관적 체계화(감정이론, Affentenlehre)를 들 수 있다.
18세기 후반-19세기에 음악을 철학·물리학에 접목시킨 사변적 음악이론가로는 화성이론에 헤겔의 변증법을 적용한 모리츠 하웁트만(Moritz Hauptmann, 1792-1894)과, 실증주의적·심미적 사고를 도입한 프랑수와-요셉 페티스(François-Joseph Fétis, 1784-1871), 그리고 자연과학이론에 복귀하여 근대 음향학의 기초를 놓은 헤르만 폰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 1821-1894)를 들 수 있다.
음악을 여러 각도에서 조망해보려는 20세기의 새로운 접근방법은 양식, 역사, 사회적 문맥과 단절된 사변적 음악이론이 완전 또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중엽부터는 다시 수학적·객관적 이론이 다루어진다. 20세기 후반에 현상학적 음악이론을 제시한 이론가로는 토마스 클립톤(Thomas Clifton) 등이 있다.
II-2. 실제적 이론
실제적 음악이론은 기원전 4세기경의 아리스토크세누스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수적 비율의 중요성을 인정은 했지만, 실제의 음악을 판단하는데는 감각적 지각이 더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하모니의 요소들』Harmonic Elements). 현존하는 고대의 음악이론서들은, 아리스토크세누스의 것을 제외하면, 대체로 모두 피타고라스 학파에 속한다.
중세시대에 처음으로 실제음악을 다루기 위한 목적(특히 성가의 지도)으로 쓰여진 음악이론서가 나타난다(9세기경). 11세기의 귀도 다렛쪼(Guido d'Arezzo, 992경-1050)는 그의 『작은 학문』(Micrologus, 1026경)에서 보에티우스의 이론을 성가의 훈련에 필요한 만큼만 다루고 있으며, "그의 책은 가수들에게는 필요가 없고 오직 철학자들에게나 유용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귀도는 아직 예외적인 편에 속한다. 당시의 다른 이론서들은 보편적으로 보에티우스의 전통과 실제적 측면의 화합을 시도했다.
13세기 후반과 14세기에는 -특히 기보법과 새로운 박자체계와 관련하여- 계속 실제적인 이론서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 저서들에 나타나는 새로운 공통점은 보에티우스의 권위에 대해 비중을 두고 있지 않은 것이다.
르네상스시대에는 특히 대위법과 선법을 다루는 실제적 음악이론서들이 많이 나타난다.
바로크시대에는 새로운 음악양식이 -<통주저음>(Basso continuo)과 단선율만 주어지고 내성부와 장식음들이 즉흥적으로 채워지는 방식의 화성적 음악이- 발전하면서, 실제 연주를 위한 지침서들이 많이 나타난다. 즉흥적인 장식음에 대한 지도서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줄리오 카치니(Giulio Caccini, 1550경-1618)의 『새음악』(Le nuove musiche, 1601/2)이다.
또한 옛음악과 새음악을 각각 <제1작법>(Prima prattica)과 <제2작법>(Seconda prattica)로 인정하면서 이 둘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이론서들이 나오는가 하면, 당시에 일어나기 시작하는 선법에서 장·단조로의 전환과정을 논급한 이론서들도 나타난다. 제1작법(엄격대위법)을 설명한 대표적인 이론서로는 요한 푹스(Johann J. Fux, 1660-1741)의 『파르낫소에의 계단』(Gradus ad Parnassum, 1725경)이 있다.
고전-낭만주의시대의 실제적 음악이론서로는 대위법에 관한 것들, 라모의 화성이론에서 수학적 방법이 제거된 것들, 기악음악의 형식이 처음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진 하인리히 코흐(Heinrich C. Koch, 1849-1916)의 『작곡입문서』(Versuch einer Anleitung zur Composition, 1793) 등이 있다.
20세기에도 작곡기법·규범이나 작품분석을 다루는 이론서들이 자연과학·철학에 기초된 경우가 많은데, 특히 배음이 다시 큰 비중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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