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받은 꽃다발을
밤새 끌어안고 잤다는 그녀는
할 말이 하 많아도
애꿎게 머릿결을 쓸어올리거나
옷매무새만 만지작거렸다.
사계(四季)의 긴 그림자를 밟으며
허무의 빈 바랑으로 울던 그녀는
어느 날 내 운명의 길섶에서
화장한 흔적이 없는 들꽃처럼
우연히 마주쳤다.
켜켜이 쌓인 감성 줄기 가운데
한 올 뽑아낸 사랑,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이 두려워
언제나 서먹한 눈빛으로
스치는 바람에 눈물짓곤 하였다.
순백의 겨울을 돌아
청명한 햇살로 가을이 다가올 무렵
매듭 굵은 소나기가 도시를 흔들고
물안개 자욱한 나무숲이 넘어질 때
편지 한 통이 꽂힌 카라꽃 바구니가
비닐로 포장된 채
내 앞으로 배달되었다.
"잠을 자다 꿈을 깬 것처럼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신으로 말미암아
잠시 내 영혼이 숨 쉴 수 있어서
나는 정녕 행복했습니다.
봉우리가 높으면 계곡이 깊듯이
인연이 깊으면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리...."
쏟아지는 빗속에
바람으로 울렁거리는 비를 맞으며
짧은 글, 긴 여운을 남긴 채
그녀는 그렇게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