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을 찌르는 아침 햇살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깊고 푸른 바다가 보이고
그녀가 끓이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넓은 거실을 휘돌아 내 위장을 자극한다
앞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그녀의 화사한 미소는
작은 거실이 작다고 느껴지지 않게 한다
마당이 넓으면 좋겠지만 작아도 상관없다
거기에 그저 그녀가 가꾸고 싶은 꽃나무 몇 그루와
상추랑, 풋고추 따 먹을 수 있는 공간이면 그걸로 족하다
여름엔 차양을 치고
그 밑에서 차와 식사를 할 수 있는 널찍한 바위 하나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면 모깃불 지피고
어렵사리 지냈던 옛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그간에 못다 이룬 정 담뿍 담아 통기타로 우리의 노래 부르리
너무 많은 것 필요없이
사는 데에 옹색하지 않으면
내 가난한 이웃 벗 삼아 함께 했으면 좋겠다
바다나 호수를 낀 우리의 카페에선
계절에 관계없이 찾아오는 길손들과 세상 사는 이야기 나누며
때론 알카한 기분으로, 때론 몽상가의 기분으로,
가끔은 동네잔치 벌여 아이들과 노인들에게 좋은 벗이 되리라
우리의 침실엔
햇볕에 늘 말린 뽀송뽀송한 이불과
둥그런 벼게 둘, 황토로 만든 구들장과 벽,
손때 반질거리는 그녀의 물건과 내 물건 몇 가지,
우리의 섹스 장면을 훔쳐볼 커다란 거울 하나면 충분하다
왜냐하면, 늙어 죽을 때가지 섹스를 해야 하니까
거실 건너 내 방엔 최신기종 컴퓨터와 공간 넓은 책상 하나,
상시 비치해 놓은 지필묵과 통기타,
빨간 벽돌과 원목으로 만든 책꽂이가 벽을 둘러싸고
그 어느 한쪽엔 카라나 백합이 있었으면 좋겠다
없으면 들꽃이라도 만족하리라
여유 자금 있으면
틈틈이 여행을 떠나 세상 눈도 넓히고 식견도 넓히고
그리하여 지친 몸으로 우리의 공간으로 돌아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아늑하고, 가장 마음 편한 곳이
바로 우리의 공간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
그리하여 카페를 찾아오는 길손들에게 자랑삼아 떠드리라
우리는 지금 삶의 진국을 맛보고 있노라고
생의 행복한 사계를 걷고 있노라고
(늬미럴, 차라리 로또를 꿈꿔라.... 삽질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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