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은 비어 있었다.
들판 너머로 작은 야산들이 병풍처럼 굴곡을 이루고
들판 복판으로 지렁이가 지나간 자국처럼 황톳길은 그렇게 나 있었다.
혹간 지나치는 버스가 자욱한 먼지를 꽁무니에서 뿜어냈지만
갓길처럼 나 앉은 농로가 이정표 노릇을 했다.
미처 따내지 못한 채, 황홀의 옷을 벗고
서리낀 주황의 빛깔로 청자빛 하늘에 매달려 있는 감이
올망졸망한 마을어귀 마다 보초를 서고 있었다.
가끔 고사목 아래 커다란 평상이 놓인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각의 공간 위엔 완전한 자유를 넘어 한가로움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토굴생활에서 벗어나 이제 막 엉성한 요사채를 하나 지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감이 떨어지고 추수가 끝날 무렵이면 동안거에 들어갈 차비를 한다는 전갈이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연극을 때려 치우고 차라리 머리를 깎았다는 후배였다.
배우로서 제법 잘 나가던 그가 한동안 안 보이자
"자살을 했다" "밀항선을 탔다" 라는 카더라 통신이 요동을 쳤었다.
- 자신에 의해 악은 행해지고, 자신에 의해 사람은 더러워 진다.
또 자신에 의해 악은 행해지지 않기도 하고 깨끗해지기도 한다.
깨끗함과 더러움은 자기 자신에 달려 있다.
아무도 남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다. -
(법구경)
그의 앉은뱅이 책상 너머로 먹으로 휘갈겨 쓴 이같은 글이 벽에 붙어 있었다.
세속의 연으로 만났을 땐 나는 까마득한 대선배였지만 그때는 경우가 달라서였을까.
우리는 첫대면부터 표정이 조심스러웠다.
어색한 미소에 어색한 합장부터가 그랬다.
사위가 어둑해질 무렵이었지만 골짜기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밑둥이 거대한 고목나무처럼 촛농이 녹아 내린 위에 촛불을 밝히고
스님과 나는 나지막한 음성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쥬라기의 공원처럼 밤이 이슥해질 무렵, 나는 곡차를 꺼내 들었다.
배우로 활동할 때에도 음주와 흡연을 안 했던 스님이라 나는 오히려 당당했다.
아니 어쩌면 그는 내가 선배였기에 눈감아 주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마음의 보석상자가 무엇인가요?"
몇 순배 자작을 하고나자 뜬금없이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의 입에서 예전처럼 형님이나 선배님이라는 호칭이 생략되듯이
나 역시 스님이라는 호칭이 생략이 된 채 답을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질문의 요지가 인생관을 묻는 것인지 가치관을 묻는 것인지 애매했지만
딱히 무엇이라 대답하기도 곤란한 질문이었다.
"영속성을 지니고 있는 보석상자는 없는 것 같아요.
사랑도, 섹스도, 여자도, 연극도, 돈도, 명예도, 내 기타도...."
듣기에 따라 궁색한 답변이 되겠지만
실은 나는 속으로 제법 운치있는 답변이라고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의 법명은 혜초였다.
내 답을 들은 그는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나는 지금도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세사의 번뇌가 별빛이이지요.
나는 그 별빛을 먹고 살아요.
그 별빛이 내마음의 보석상자랍니다."
아놔,~ 머리를 깎으면 죄다 이렇게 말들이 어려워지는 건가....
내 입가엔 비웃음이 아닌 비(悲)웃음이 흘렀다.
은가루처럼 쏟아지는 달빛.... 이슬 때문에 풀잎이 반짝거렸다.
소주 두 병을 비울 때쯤 요사채 주위는 적요가 휘휘 감겨 왔다.
그가 좋아하는 찔레꽃을 불러주었다.
통기타의 선율이 내 목소리를 타고 골짜기를 휘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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