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옆집 살던 정금이 누나와 나는 종종 부부가 되곤 하였다. 엄마가 되 주기를 바랐던 내 의도와는 달리 한사코 내 색시가 되기를 원했던 누나의 고집 때문이었다.
들풀을 뜯어 김치랑 나물 반찬을 장만하고 모래와 빨간 벽돌을 으깨어 깨소금이랑 고춧가루를 만들었다. 뒤뜰의 허물어진 장독대가 늘 우리의 보금자리였다. 댓살이 꺾어졌거나 구멍이 송송 뚫린 비닐우산이 지붕이었다.
정월 대보름날, 쥐불놀이로 앞산 뒷산이 온통 불야성을 이루고 있을 때 누나는 집에서 부친 전이랑 군밤을 들고 응원을 하러 나왔다. 먼발치서 오두마니 서 있던 누나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내가 던진 불덩이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정통으로 누나의 머리를 맞춘 것이다.
한동안 누나를 볼 수 없었다. 분주하게 양쪽 어른들이 드나들던 어느 날 우리 집은 이사를 가게 됐다. 담 모퉁이에 숨어 손을 흔드는 누나의 창백한 모습이 내 두 눈에 밟혀왔다. 입가엔 엷은 미소가 서려 있었지만 그렁거리는 내 눈물 때문에 누나의 모습이 일그러져 보였다. 그 일그러진 잔상이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나를 괴롭힐 줄 몰랐다.
콩깻묵이 겨울 대숲바람 보다 싫었던 정금이 누나.... 손톱 달 같은 눈썹과 유난히도 까만 눈동자를 지녔던 누나.... 대학 다니는 석이 형 때문에 부뚜막에 앉아 종종 처녀몸살을 앓던 누나.... 그러나 늘 장독대에서, 어른이 되거들랑 정녕코 내 색시가 되겠다던 누나였다.
그 누나의 환생이었을까.... 아내는 나보다 연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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