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서랍

권철의 연극천일야화 <22> 연극 합동공연 '허생전'

시인 김상훈 2008. 8. 13. 15:14
권철의 연극천일야화 <22> 연극 합동공연 '허생전'
지역 극단간 배우 교류 물꼬 터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연극 '허생전' 포스터.
극단들도 생존을 위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1990년대까지도 대부분 극단들은 폐쇄적일 정도로 단원 관리에 신경을 썼다. 단원의 많고 적음이 그 극단의 저력이요 자산으로 인식됐다. 물론 발군의 연기력을 가지고 있는 연극인들이 얼마나 많으냐가 중요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현재 국내 극단 상황을 보면 서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작품에 따라 오디션을 하고 그에 맞는 배우를 섭외하여 제작하는 풍토로 바뀌었다. 극히 이례적으로 몇몇 극단만이 독특한 방식으로 자체 단원들을 훈련시켜 가며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서울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이 극단 단원 중심으로, 소도시의 경우는 더욱 빈약한 단원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배우의 폭이 좁고, 결국 중장년 역할도 나이 어린 배우들이 맡게 되어 작품의 질이 저하되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극단이 영세해 배역에 알맞은 배우를 섭외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극단 간에 서로 교류하고 합동공연을 열어 배우들을 공유하면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서로의 작품세계가 다르면 이 방법 또한 간단치는 않다.

부산에서도 연극협회가 주관한 것도 있고 극단 간 합동공연이 제법 많이 올려졌다. 1986년 아시안게임을 기념하기 위하여 연극협회 차원에서 추진된 합동 공연이 연극 '허생전'(오영진 작·이동재 연출)이다. 부산 시민회관 소극장에서 1986년 9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공연되었다. 당시 합동공연에 참여했던 극단(한새벌, 부산레파토리 시스템, 예술극장, 부두, 예랑, 예원, 두레마당, 처용, 부산무대)과 배우들은 흔치 않은 합동 공연을 통해 상호 교류의 물꼬를 텄다. 경력에 따라 선후배 사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연습 뒤의 잦은 뒤풀이는 작품에 대한 토론장으로 변했다. 또한 각 극단을 대표하는 배우나 스태프들도 극단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무척 열심이었다.

이 합동공연을 계기로 극단 간의 교류는 물론 배우들도 다른 극단에 객원 출연하는 기회가 생겼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당시 필자와 이상복(전 시립극단원) [김상훈](현 프리랜서) 나종기(교사극단 한새벌) 이돈희(현 시립극단원) 손기룡(현 시립극단 예술감독) 정행심(현 시립극단원) 신동배 등 많은 배우들이 참여했었다. 그런데 아시안게임 축하 공연인지라 방송국에서도 촬영을 오곤 했었는데, 그 와중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평소 장난기가 많고 산만했던 신동배(상인을 역)가 [김상훈](상인갑 역)과 연기를 하는 장면이었다. 마침 촬영팀이 이 장면을 촬영할 때였다. 카메라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며 촬영을 하고 있는데 신동배는 상대 연기자인 [김상훈]을 보면서 연기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 카메라를 쳐다보며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 [김상훈]의 심정이 어떻했겠는가. 자기를 보면서 연기를 해야 하는데 엉뚱한 곳을 보면서 연기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신동배의 아버지가 관람을 왔었는데 연기 도중에 어디 앉아 계시는지 찾다가 졸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때부터 대사를 까먹고 허둥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은 이방 수염인 팔자수염을 붙였었는데 과도한 안면 오버 연기로 수염이 덜렁거리니까 아예 손으로 누르고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하여튼 상대 배우를 잘 못 만난 [김상훈]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불안 속을 헤매야 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이렇듯 합동공연은 극단 간에 배우를 안배하다 보니 연기력 편차가 심해서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래도 '허생전' 합동공연은 극단과 배우들의 반목과 질시를 일시에 해소하는 의미 있는 공연으로 기억되고 있다.   연극인/ 권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