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누군가 무심코 덧없음이라고 말할 때
시인 김상훈
2010. 4. 14. 06:31
누군가 무심코 덧없음이라고 말할 때
잠시 호흡을 멈추고 되돌아보면
우리는 수많은 세월의 숲과 강을 건넜음을 알게 된다
덧없음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그 속에서 또한 많은 것을 보았음도 알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의 기억은 오래 남아있거나
기억이라는 것조차 기억이 없는 날이 있다
이런 말을 하기 위해서는
빛바랜 사진을 영정처럼 들고 말해야 한다
무심결에 밟아 죽인 풀벌레도 잊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덧없음이라는 말 앞에서
대단히 교활해지고 침착해야 하며 영리해야 된다
덧없음이 부질없음으로 승화되어도
어느 날의 기억은 오래 남아있거나
기억이라는 것조차 기억이 없는 날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