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아, 젓가락이 짧고녀

시인 김상훈 2010. 1. 29. 02:44

 

유년시절,

후암동 꼭대기 우리 집은 마당이 꽤 너른 편이었다.

황토를 곱게 빻아 분진가루를 뿌린 듯한 마당은 언제나 뽀송뽀송했다.

한 귀퉁이엔 채송화와 나팔꽃, 맨드라미가 피어나고

뒤뜰엔 아주 널찍한 장독대가 있었다.

 

三代가 한지붕에서 살았는데

삼촌들과 고모는 죽어라 팝만 듣고

할아버지는 당신의 재산목록 제1호인 축음기로 클래식만을 고집했다.

사실은 할머니가 더 고집을 부렸다.

오로지 전통가요만 즐겨 들었으니까.

그 틈새에 낀 내 나는 늘 짬뽕이었다.

 

여름밤이면

밤잠을 설친 고모와 나란히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구경했는데

하늘은 그야말로 까만 자개 상이었다.

연초록으로 빛나는 은하수 위에

새파란 빛을 띤 왕별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간혹 나는 장독대에서 별을 헤는 아이가 되곤 하였다.

 

용산고등학교에서

용산 꼬마라고 불리는 큰 삼촌은 소위 학생 깡패였다.

학교에 늘 불려다니던 할머니가 본인보다 출석 일수가 더 많았을 정도니까.

그러나 4.19 혁명 때 제일 용감했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그 전설은 순전히 본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무용담이어서

옆구리에 스치고 지나간 총알자국이라는 것도 그저 불에 데인 듯한 느낌일 뿐

 신빙성이 매우 낮은 증언이다.

 

그 삼촌이 어느 날

막걸리 냄새 휘휘 풍기면서

밤하늘에 떠있는 휘영청 한 달을 보고 시 한 수 읖조렸다.

 

"내 너를 품을 수 있는 날이 언제련고

내 너를 술안주 삼을 날이 언제련고

아, 젓가락이 짧고녀.... "

 

우히히, 키득키득,

고모와 나는 그렇게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지만

그때 그 시절이 마냥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