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아버지도 가고 나도 가고

시인 김상훈 2009. 12. 1. 06:04

 

부자지간의 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었던 아버지,

박정희의 신봉자였던 아버지의 관심사는 오로지 정치였고

독서라고는 신문 읽는 것이 전부였다.

 

통기타를 메고 다니며 유신정권과 맞서 싸우는 아들을 볼 때마다

당신께서는 속에서 얼마나 천불이 났을까.

 

어느 날부턴가 나는

과묵한 아버지에게서 이상한 음식 취향을 발견한다.

 

생 달걀을 한 컵 가득히 깨 넣고

소금을 뿌린 뒤

참기름 몇 방울 넣곤 대충 휘휘 저어서 단번에 마셔버린다.

 

온몸에 진저리가 나도록 이상할 것 같은 그 맛,

먹어보지도 않고 나는 무조건 진저리를 쳤다.

 

그런데 요즘 놀랍게도

가끔 그렇게 마시는 나를 보곤 속으로 흠칫 놀란다.

 

그렇게 한 세대가 지나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