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五月 같은 女子
시인 김상훈
2009. 4. 7. 05:11
바람의 방향이 속내를 들킬 것 같은 눈 부신 햇살이다. 바람의 등을 타고 남단 끝 자락에서 다가올 五月의 신부는 예전에 그랬듯, 이번에도 필시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타날 것이다. 이를테면 틀에 머리인 양 말아 올린 먼 산봉우리의 휘부윰한 톤이 그랬고, 유예된 빛이 없는 푸른 바다 색깔이 그랬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맑은 바람이, 내 기억마저 쓸어버리는 아침이면, 해를 어깨에 걸머진 산의 키가 훨씬 낮아 보였다.
빛으로 둥근 갓을 쓴 오후, 어느 곳에나 눈을 들면 까만 도포(道布) 위로 아지랑이에 눈시울이 아렸다. 너울춤을 추는 아지랑이를 보면서 나는 내가 사막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낙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신기루가 나타나듯이 어디선가 불쑥 아카시아 향기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저녁나절이면 고금(古今)의 비밀을 간직한 낙조가, 차고 비는 자연의 이치를 상영했다.
사나흘, 작은 어촌에 머물면서 나는 이와 비슷한 느낌의, 五月 같은 여자와 마주쳤다. 단정한 입성에 다소곳한 몸가짐, 별것 아닌 말 건넴에도 특유의 우물거리는 소리로 귓불이 발개지곤 했지만, 용기를 내 쳐다보는 눈빛은 고즈넉한 호수처럼 그지없이 조용하고 맑았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녀의 몸에선 제철도 아닌데 왜 산국화꽃 향기가 났을까. 그런 여자를 보면 나는 간혹 늑대가 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