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정금이 누나

시인 김상훈 2009. 4. 6. 06:30

 

손톱 같은 눈썹에 유난히 빛나는 눈동자를 지녔던 정금이 누나는 소꿉놀이 할 때면 한사코 내 색시가 되겠다고 우겼다. 빗살이 꺾이거나 구멍이 송송 뚫린 비닐 우산이 우리의 지붕이었다. 들풀을 꺾어다가 김치를 담그고 나물을 무칠 땐 모래를 깨소금이듯 뿌렸다. 빨간 벽돌을 으깨어 고춧가루도 만들었다. 어른들이 없는 틈을 타 우리는 종종 장독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장독대 한복판에 살림을 차렸다. 그 좁은 공간 안에 둘이 있다는 묘한 속닥함이 우리를 매료시켰다. 가끔, 어른들 몰래 담요를 들고나와 그 장소에서 밤하늘을 보며 나란히 눕기도 했다. 그때마다 팔베개를 해주던 누나는 엄마였고 애인이었으며 내 색시였다.

 

어느 겨울방학, 대학에 다니는 석이 형을 본 정금이 누나는 언제부터인가 부뚜막에 앉아 둥근 달을 보며 허엿한 한숨을 내리까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곁에 다가가도 고개를 무르팍 사이에 쿡 처박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까닭인지 명확한 뜻은 알 수 없으나 어린 마음에도 측은지심이 생겼다. 어깨를 토닥이거나 웃옷을 벗어 등을 덮어주는 것이 옳은 것 같아 그렇게 할 뿐이었다. 누나는 말없이 내 어깨에 몸을 기대면서도 가끔 옆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곤 했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나로선 알 턱이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누나는 영글지 않은 납작한 가슴으로 처녀 몸살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대보름날, 쥐불놀이로 앞산 뒷산이 온통 불야성을 이룰 때, 정금이 누나는 작은 소쿠리에 밤이랑 호도, 군고구마랑 부침개를 들고 나왔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누나였다. 나를 향해 손짓하는 누나가 너무 반가웠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눈이 커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으며 깡통을 돌리는 오른손에 더욱 힘이 가해졌다. 얼른 제일 큰 불을 만들어 누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깡통을 돌릴 때마다 깡통 속에서 무서운 火氣소리를 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깡통을 힘껏 던졌다. 포물선으로 날아가던 깡통이 먼발치에 오두마니 서 있던 정금이 누나를 정통으로 맞혔다. 머리께였다.

 

양쪽 집 안 어른들이 여러 번 오갔다. 대략 한 달쯤 지나자 우리는 이사를 가야 했다. 군용 트럭에 살림살이가 실어지고 나는 그 짐 더미 위에 앉아 짐짝 취급을 당했다. 때리기도 지친 삼촌들이, 조선 천지의 벙어리는 입 벙긋해도 너는 숨 쉬는 소리조차 내지말라는 으름짱에 주눅이 들었다. 그때, 담벼락에서 하얀 얼굴이 비쳤다. 아무리 봐도 정금이 누나였다. 어딘가 모르게 기가 빠진 듯한 핼쓱한 모습이었지만, 정금이 누나는 틀림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트럭이 움직이자 누나도 몸을 반쯤 내보였다. 누나가 손을 흔들었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입 모양이었다. 그렁그렁한 눈물 때문에 누나의 그런 모습이 곧 잔상이 되어 자꾸 찌그러졌다. 그 잔상은 내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정금이 누나의 환생이었을까. 아내는 나보다 연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