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지독한 물빛

시인 김상훈 2009. 3. 10. 04:59

 

 

이렇게 해빙의 계절이 오면 나는 늦가을이 떠났다 돌아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지울 수 없는 느낌은, 계절이 털갈이할 적마다 무공(舞攻) 깊숙이 농밀한 언어로 저마다 예찬을 아끼지 않았던 시인들조차 그리움이라는 말로 얼버무릴 때 더욱 확연해진다.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능사는 아닐진대 계절의 마디와 그 마디를 잇는 이음매까지 그리움은 넓게 퍼져 있다. 그것은 마치 낡은 쇠 파이프 안에 물든 붉은 녹 같기도 하고 오래된 우물 안의 청청한 이끼 같기도 한데 전분이 섞인 액체처럼 지독한 물빛을 띠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지독한 물빛이 그리움과 눈물의 이음 동의어처럼 사용되는 알레고리인지 모른다.

 

그리하여 어느 계절이든 나는 계절을 일컬어 곧 지독한 물빛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