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시인 김상훈 2009. 2. 11. 05:18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백 장의 대서사시 [신곡]을 쓴 단테는

쉰여섯의 생애 

삼십 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을 베아트리체와 함께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 영원히 베아트리체가 살았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다.

가능했기에 [신곡]이 탄생했고 베아트리체가 존재했겠지만

어린 시절 피렌체의 축제날,

꿈꾸는 듯한 표정에 보석 같이 해맑은 눈의 그녀와

음울한 눈초리에 가련한 얼굴의 단테가 운명처럼 만났다.

 

그리고 대 여섯 해를 보낸 뒤,

아루노강의 베케오 다리에서 그녀와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어린 시인의 가슴에 시의 뿌리를 내리게 하고

끝없는 동경과 연모의 감정을 불어넣은 베아트리체!

 

그녀가 잠시 보낸 미소는

단테의 가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을

빛과 환희로 바꾸어놓았다.

그뿐이었다.

이 두 번의 만남이 이들 로맨스의 처음이고 끝이었다.

 

피렌체의 축제와 아루노강의 베케오 다리에서 보낸

녀의 시선과 미소만 아니었더라면

 

-우리네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 속을 헤매었다.-

 

[신곡]의 첫머리는 이렇게 쓰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도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정녕 쓸쓸한 일인 것 같다.

더불어 사랑은 위대하다, 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