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고목나무
시인 김상훈
2009. 1. 20. 04:57
온갖 벌레와 곤충이 세들어 산다. 나이가 들어 비록 자양분은 없지만 튼튼한 안식처다. 달세도 안 받으면서 겨울이면 추위를 막아주고 여름이면 더위를 식혀주는 센스까지 발휘한다. 그것은 인위적인 배려가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자비심이다. 간혹 새들의 이 착륙장이 되기도 하고 보금자리를 꾸밀 수 있게 자그마한 터도 무상으로 제공한다. 때로는 뱀이라는 놈이 생명을 약탈해 가지만 자연의 섭리임을 망각하지 않는다.
어디 그뿐이랴. 인간에겐 없어서는 아니 될 매우 중요한 유기체다. 태고 이래로 인류에 이바지한 공을 내세운다면 단연 으뜸이다. 인간의 평균수명 보다 몇 배나 긴 것 가운데는 인간이 죽을 때까지도 모를, 우주의 섭리를 체득하면서 동시에 몸소 실천한다. 풀빛 청청한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온갖 자양분을 제공하고 재해나 인간의 도끼질에 비명횡사를 하는 순간까지 자비심을 잃지 않는다.
입으로 자비를 말하고 사랑을 말하면서도 자연으로부터 엄청난 약탈을 일삼는 인간과 비교해 볼 때 절대 어떤 권리나 요구를 주장하지 않은 채 대부분 일생을 마친다. 인간이 명치 끝 아픔으로 느끼고 배워야 할 점이다. 가르침이란 반드시 활자화된 글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인간의 사부는 인간이 아니라 진정 자연이기 때문이다. 성현이나 성자들이 종종 자연을 찬양하고 위대한 카테고리를 탄생시키는 이유도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