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로 작정했던 나날들
시멘트 바닥에 살갗이 찢겨 한꺼풀 벗겨진 속살에 고문을 당하듯, 80년 겨울 부산의 댓바람은 몹시도 차가웠다. 장모님께 아이들을 맡기고 주머니에 달랑 2만 원을 들고 무작정 내려온 곳이 부산이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생면부지의 땅, 2만 원을 대부분 심야다방 커피 값으로 헌납했다. 싼값에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기막힌 장소였지만 아내와 나는 거의 일주일 째 아무 것도 먹지를 못했다. 아니, 먹을 수가 없었다. 대략 30년 전의 화폐 가치를 인정한다손 쳐도 호부 2만 원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손가.
그나마 아내와 나는 걸치고 있던 외투 두 벌마저 헐값에 팔아 치운 덕분에 칼바람과 배고픔으로 거의 실신 상태였다. 대한민국이 땅이 좁다고는 하지만, 도시는 넓었고 집들은 많았어도 추위를 피해 우리가 누울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절망이었다. 그렇다고 사지 멀쩡한 년 놈들이 엎드려 구걸은 하고 싶지 않았다. 역 대합실에서 박스를 깔고 누워, 무미건조하게 만든 대합실 천정 무늬를 하루 종일 무미건조하게 바라보았다. 아리랑호텔 화장실과 대합실 화장실에서 대충 고양이 세수는 할 수 있어도 목욕은커녕, 이를 닦거나 머리 감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노릇이었다.
여자인 아내는 오죽했을까. 보름쯤 굶었다. 몸이 무거워 앉아 있기도 버거웠다. 졸립기는 왜 그렇게 졸리운지. 아내의 얼굴이 퉁퉁 부우면서 시퍼렇게 변하고 있었다. 인간적으로 너무 불쌍해 보여 도저히 눈 마주치기가 껄끄러웠다. 머리를 못감아 산발을 한 아내와 나는 한마디로, 노숙자였다. 누런 이빨이 금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틈엔가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았다. 음식점 쓰레기통을 뒤지다 다른 노숙자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아내가 맞을까봐 온몸으로 감싸 안은 채 나는 곤죽이 되 버렸다.
슈퍼에 들어가 제법 묵직한 햄을 훔치다가 종업원에게 덜미를 잡혔다. 난생 처음 공식적인 도둑질을 하다 보니 매우 어설펐는가 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논리는 확실했다. 나는 주인장에게 수십 차례 뺨을 얻어맞고 종업원의 발길질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바깥에서 동정을 살피던 아내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뛰어들었다. 그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나는 미친놈처럼 웃다가 정신병자처럼 울었다. 그것도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아내는 울 힘도 없었는지 그저 멍한 표정이었다.
나는 죽기로 마음먹었다. 마지막으로 아내를 데리고 무작정 일면식도 없는 다방으로 들어갔다. 주인장을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나는 괜찮으니 아내를 숙식만 제공해 준다면 주방아줌마로 채용시켜달라는 취지였다. 거지꼴의 우리를 쫓아내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을 듣는 주인 여자는 금이 간 내 안경너머로 내 눈만 줄곧 쳐다보고 있었다. 눈빛이 진실하게 보인다며 흔쾌히 승낙을 하는 그녀에게 나는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아내를 두고 다방 계단을 내려올 때, 결코 보내고 싶지 않은 남편이었겠지만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인정한, 체념에 가까운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당신 꼭 찾으러 갈게요. 한 달 뒤, 부산역에서 만나요. 꼭요, 꼬옥~~"
이명처럼 들리는 아내 음성은 울음을 참느라 목소리가 모기소리만 했다. 나는 그렁거리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손만 슥 들어보이곤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남자니까 그렇게 해야 될 거 같아서였다. 이제 바다로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터였다. 영도다리 난간에서 뛰어내리면 그뿐일 터였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아니 죽지 못했다는 표현이 옳았다. 자갈치시장을 배회하다 퍼덕거리는 생선을 보았고 일렁이는 파도와 뭔가 모르게 따사로운 햇살과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과 맑고 투명한 내 아이들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마음을 돌려 먹었다.
한 달 뒤----, 몇 개 월 동안 기른 머리는 봉두난발이었고 수염은 길고 까맸다. 분수대 벤치에 앉아 담배꽁초를 주워 뾰족한 입모양으로 한 모금씩 아껴 피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평온했다. 날짜가 어떻게 흐르는지 관심도 없었고 아내가 나를 찾아오리라는 희망도 까맞게 잊고 있었다. 궹 한 눈에 피골이 상접한 내 몰골답게 나는 세상의 모든 인연을 잊고 있었는지 몰랐다. 그러나 마음은 평온했을지 몰라도 정신은 혼미한 상태였다.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분해된 내 영과 육으로는 며칠을 굶었는지 계산이 안 되는 상태였다.
어디선가.... 은아 아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아이 이름 같기도 하고 흔하게 듣는 이름 같기도 한, 그러나 깜박거리던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듯 내 의식 속에 전깃불 하나가 반짝하고 켜졌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무심코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아아, 뽀얀 얼굴에 말쑥한 옷차림으로 아내가 거기에 서 있지 않은가. 행인들이 보던 말든 아내는 나를 끌어안고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너무 말라버린 모습과 긴 수염과 긴 머리인 내 몰골 때문에 남편인 줄도 모르고 내 곁을 몇 번이나 지나쳤단다. 힘없이, 빙그레 웃고 있는 나를 힘껏 안고 아내는 하염없이 울었다.
매년 겨울이 찾아오면 그때 그 처절했던 기억이 문득 되살아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