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가을이 빨간 이유
시인 김상훈
2008. 10. 10. 05:22
바람을 일구고 소리 내어 우는 저 갈잎, 자네 집 술 익거들랑 부디 나를 불러달라며 新 만전춘별사를 노래하는데 환치기 당한 가을은 지금 어디 메서 출렁이고 있는가. 타다 남은 장작처럼 서 있는 허수아비여. 어느 땐가 새벽이 익어 벌판이 새롭게 일어서면 사랑도 미움도 무엇이든 깨물고 싶어, 할 말이 하 많아 그리움이 무거울 아아, 고운 빛 가득한 눈물의 토카타.
세상과 낙장불입의 이혼장을 쓸망정, 대꽃은 백 년에 한 번 피어도 절대로 지조와 향기를 팔지 않았다지. 싸리비로 누운 가을 햇살은 음력으로 커가는데 한 세월 지나면 어둠이 걷힐런가. 그리운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는 차라리 이명에 시달리는 것이 났겠다 싶어 영글다 만 가슴에 불을 지피지만,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속살 터진 침묵 꾸러미에 그믐달 같은 술을 붓는다.
김상훈-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