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서랍

권철의 연극천일야화 <10> 연극 '맥베스' 에피소드-상

시인 김상훈 2008. 8. 13. 15:09
권철의 연극천일야화 <10> 연극 '맥베스' 에피소드-상
2층 무대서 떨어진 연기자 아이스크림 찾아 황당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연극 '멕베스' 중 한 장면.
혹자는 지금도 부산을 문화 불모지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보다도 더 척박하고 힘겨운 그 시절 부산 연극판에 직업극단을 표방한 극단이 나타났다. 바로 부산 레퍼토리시스템으로, 1978년에 창단되었으니까 벌써 30년이 다 됐다. 그러나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1980년대 후반까지는 부산에서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으나 하나 둘 극단을 떠나가는 단원들이 생겨났다. 단원들은 따로 떨어져 나와 극단 맥, 도깨비, 시나위 등을 만들었다. 그리고 많은 이 극단 출신들이 다른 극단이나 프리랜서 배우와 스태프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어느덧 중견 연극인들이 되었고 부산연극 현장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부산연극의 중추적 역할을 해내고 있다.

단원 개개인의 작품세계와 이상이 맞지 않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단원이 없는 극단은 한동안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몇 년 전부터는 1년에 한 두 작품씩 공연을 올리고 있어 같은 연극인으로서 필자는 여간 반갑기 그지없다. 활발한 활동과 좋은 작품으로 부산연극의 견인차 역할을 해주길 기원해 본다.

이 극단이 욱일승천하던 때가 있었다. 이 극단은 창단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에 하나인 '맥베스'(장세종 번역, 이기원 연출)를 준비하였다. 공연은 부산시민회관 소극장(1988년 12월 23일부터 27일까지)에서 있었다. 당시 출연진은 화려했다. 창단 멤버였고 그때 서울에서 뮤지컬 배우로 유명했던 곽동철과 역시 서울에서 활동하던 박팔영이 우정 출연을 했다. 또한 부산연극계의 스타였던 이상복(전 시립극단 수석단원)과 김상훈(현 프리랜서) 이동희(현 서울에서 활동) 이돈희(현 시립극단 부수석단원) 유상흘도 출연했다. 여기에 박상규(현 극단 시나위 대표) 정행심(현 시립극단단원) 박미형 김혜정 조영진(전 연희단거리패)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그리고 지금은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박칼린(본명 박영미)도 마녀로 출연했었다. 이렇게 막강한 배우들이 출연한 무대였지만 연극의 신 디오니시스는 완벽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공연 날이었는데 맥다프 역(유상흘 분)의 혼령이 맥베스(이상복 분)의 환영으로 나타나는 장면이었다. 연극적 표현은 2층 구조로 된 무대 위를 맥다프가 가로질러가며 퇴장하면 환영에서 깨어나는 설정이었는데, 앞만 보고 걷던 유상흘은 갑자기 쿵하고 무대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무대장치 상에는 2층 무대 끝부분에 못미쳐서 방향을 틀어 내려오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연기에 몰입한 유상흘이 그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계속 걷다 보니 허공에 발을 헛디딘 것이었다. 다행히 유상흘의 뒤를 따라오던 연기자들은 앞사람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 공연은 계속 진행되었지만 무대 뒤에서는 이 급작스런 사태를 수습하느라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유상흘이 떨어진 채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고통을 호소하자 공연기획을 했던 김동석(현 부산연극협회장)과 연기자였던 정행심은 그를 부축하여 병원으로 향했다.

이들은 침을 맞히려고 공연장 인근의 한의원을 찾아가고 있는데 불의의 부상을 당한 유상흘은 천연덕스럽게 씨익 웃으면서 "아이스크림 하나 묵으면 게안타"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부축하고 가던 두 사람은 어이없으면서도 농담이겠거니 하면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주었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을 어린애 마냥 맛있게 다 먹은 유상흘은 "이제 하나도 안 아프다. 다 나았다. 극장으로 가자"이러는 게 아닌가. 황당했지만 부상한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까 가던 병원을 뒤로 하고, 허탈하게 극장으로 오고야 말았다. 분명 엄살은 아니었는데 아이스크림이 천하의 만병통치약이었는 지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는 연극계의 미스테리다.

연극인/ 권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