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 이놈의 부침개
어릴 때 할머니가 부쳐준 부침개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
재래시장 파전 가게를 찾아보거나 아내를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부탁도 해봤지만
그때 홀랑 넘어간 할머니의 부침개 맛은 도무지 찾을 길이 없다.
그저 밀가루에 소금으로 간만 맞추고 노릇노릇, 쫄깃쫄깃하게
굽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식히고 난 부침개는 그 맛을 더욱 감칠 나게 한다.
하여, 오늘 때마침 비도 부슬부슬 내리는데, 분위기학상
내 기필코 그때의 그 맛을 맛보리라는 작심으로 부침개를 만든다.
양푼에 물을 붓고 밀가루를 넣는다.
주걱으로 휘저어보니 아무래도 너무 되다.
물을 조금 더 붓자.... (음.... 이번에 너무 묽다)
밀가루를 조금 더 넣는다.... (음.... 역시 도로 되다)
휘젓는 손질이 어설퍼 싱크대 위로 하얀물방울이 사방으로 튄다.
그렇다면 다시 물을 아주 쬐꼼만 더 붓자.... (음.... 우쒸, 쬐꼼인데 왜 또 되지?)
양푼이 점점 작게 느껴져 좀 더 큰 양푼에 쏟아붓는다.
밀가루 더 붓고.... 다시 물 붓고.... 또 밀가루.... 다시 물.... 또....
붓고, 넣기를 반복하다보니 밀가루 한 봉지가 다 들어간다.
(머리에서 슬슬 김이 나기 시작한다)
싱크대 주변을 보니 마치 대포동 미사일 한 방 맞은 것 같다.
사방으로 튄 하얀 물방울이 흰 꽃이 되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그래도 일찌기 어느 현자가 이르기를,
가만히 놔두면 절로 이루어지리라 했으니 인내를 갖고
열심히, 아주 열심히 주걱을 휘젓는다.
얼마나 저었을까.... 커다란 양푼 속엔 부침개 반죽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수제비 반죽도 아닌 것이 가득 들어 있다.
마치 엄청나게 많은 양의 치즈를 녹인 것처럼....
(아아, 노릇노릇 쫄깃쫄깃이라니.... 꿈이야 그건....)
후다닥~~ 빡빡, 거의 신경질적으로 싱크대를 닦아내고
철퍼덕, 물커덩, 진득거리며 흘러내리는 반죽을 양푼째 콱, 냉장고에 처넣는다.
(철뙤반죽이라더니 딱 그짝이군.... 아, 배만 뒈지게 고프네.... 씨바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