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김장을 담으면서

시인 김상훈 2007. 12. 5. 18:23

三代가 한 지중 세 가족으로 살던 어린 시절

집안의 년 중 행사 가운데 김장이 가장 큰 몫을 차지했던 기억이 난다.

김치만 많이 담가도 배가 부르고 반찬이 넉넉했던 느낌은

어린 내 눈에도 잔뜩 포만감을 안겨주곤 하였다.

 

백 포기는 기본이고 많이 담구는 해에는 삼백 포기도 담았다.

남자들은 배추를 나르고 여자들은 씻고 절이고 하기를 이틀,

마지막 날엔 양념을 버무리고 배추 속에 양념을 넣는 작업이 이어진다.

그때 마당 한 귀퉁이에 땅을 파서 독을 묻는 일은 남자들 몫이었다.

 

남자들은 할아버지의 지휘 아래, 여자들은 할머니의 지휘 아래 움직였다.

어린 마음에도 우스운 건, 바람둥이 큰삼촌이 가짜 며느리를 둘씩이나 불러

김장 담구기에 투입을 시키는 거였고, 식구들은 영 마뜩치않으면서도 애써 외면한 채

고모를 졸졸 따라다니던 가짜 사위까지 동원시킨다는 거였다.

 

어제, 절인 배추를 차에 실고 집에 도착한 것은 새벽 두 시쯤이었다.

그때부터 팔을 걷어 부치고 마누라와 둘이서 배추를 버무리기 시작했다.

잔심부름이나 하고 간이나 보던 내가 거들어주는 까닭은 예년 보다 양이 많아서였다.

 

"헐, 두 식구에 무슨 김치를 이리 많이 담아?"

 

마누라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배추 속에 양념을 넣는다.

침묵 가운데 배추 속 버무리는 소리만 거실 안에 가득하다.

마누라 잔소리가 조금씩 잦아진다.

그렇게 넣으면 안 된다느니, 음식은 정성과 손맛에 달렸다느니....

 

"커피 한 잔 끓이면 안 되요?"

(우쒸.... 나두 담구 있구만....)

 

"담배 한 대만 부쳐줘요"

(우쒸.... 나두 담구 있구만....)

 

세 시간쯤에 이르러 허리와 다리, 어깨와 손목이 뻐근해 온다.

창밖엔 세찬 바람이 불면서 괴이쩍은 짐승소리가 거실로 차오른다.

고만고만한 박스들이 무려 여섯 개, 정강이 높이의 독이 두 개, 그리고 이따만한 비닐포대가 두 개....

다 담구고 나자 밖은 이미 먼동이 터 올랐고 시간은 아침 6시였다. 

 

마누라는 김치 한 포기씩 여섯 포기를 작은 비닐에 정성스럽게 넣는다.

그리곤 박스 여섯 개와 이따만한 비닐포대 두 개를 차례로 밖에 내놓는다.

독에 담긴 김치만 남겨놓고 모두 나눠줄 거란다.

 

(이런 덴당.... x이 빠지게 담갔더니 나눠준다고?....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