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진정 아는 게 힘일까, 모르는 게 약일까?

시인 김상훈 2007. 11. 5. 02:19
최근 1~2년 사이에 암으로 세상을 뜬 세 사람이 있었다.
친구, 선배, 후배.... 차례로 간암, 췌장암, 위암이었다.
친구는 출판사를 운영했었고 선배는 공교롭게도 의사였으며
후배는 자영업을 하면서 왕성하게 활동을 하던 이였다.

선배 후배의 일상생활은 잘 모르더라도
친구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기에 그의 일상을 너무도 잘 아는 사이였다.
잦은 외국 출장과 엄청난 음주에, 나이를 잊은 듯 밤일을 거르지 않았던....
거기다 꼭 빠지지 않고 주말마다 산행을 즐겼다.

골프와 헬스로 몸을 다졌다는 선배,
타고난 체력과 186의 키에 몸무게 102키로의 후배,
이들의 공통점은 세 사람 다 평소에 호방하고
나름 일정한 바이오리듬을 지키고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전이가 덜 된 상태에서 진단을 받았던 친구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버티기를 2년여.... 헌데,
막상 말기상태에 이르러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그는 막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삼 개월을 버티다 눈을 감았다.

선배와 후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힘들다, 가망이 없다, 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선배는 그나마 육 개월, 후배는 겨우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힘들다, 가망이 없다.... 이 말이 그토록 무서운 말이었을까?

만일에,
힘들다, 가망이 없다, 라는 말을 안 했더라면 어땠을까.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더 버텼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차피 가망이 없기는 매 한 가지겠지만....

세상사 이러한 일들이 참 많다.
나이를 하나씩 더 먹으면서 피부 깊숙이 느껴지는 건
모르는 게 약일 때처럼 세상을 만만하게 보았던 지난날의 치기어림과
뒤늦게야 알아버린 일들에 대해서 이제는 겁이 난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