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검정 고무신

시인 김상훈 2007. 8. 10. 16:22

고무줄처럼 휘청거리는 줄다리 밑으로
돌덩이로 만든 징검다리가 놓여 있고
그 밑으론 맑은 도랑물이 흐르던 등하굣길....

늦은 봄부터 이른 가을까지 줄기차게 입던 반바지와
한쪽으로 축져진 커다란 러닝에 필경 젖꼭지 한쪽은 드러나 있었다.
책 보자기 속에 들어 있는 도시락은
하굣길 뜀박질에 장단을 맞추듯 쩔그럭, 잘깍 소리를 내곤 했다.

검정 고무신....
명절 때나 돼야 말굽을 갈아 끼우던 시절이라
고무신 한 켤레 새로 사 신으면 찢어질세라, 뚫어질세라, 조심조심....
어린 마음에도 가난이 무엇인지 대충은 알고 지내던 터였다.

 

모래사장에서 신발 한쪽을 휘어 트럭을 만들기도 했다. 

언제나 내 고무신 트럭이 세다는 듯 서로 박치기를 했다.

거의 삼 계절을 신는 신발이었기에

고무신을 벗으면 발등엔 늘 고무신자국이 선명했다.

그 사이로 때가 껴 그 선은 더욱 선명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는 동안
도랑물은 얼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고
봄에 이르러 산야는 온통 바람꽃과 아지랑이로 뒤덮여 있을 때
바닥이 몹시 닳아 이제는 형체만 남은 검정 고무신....
뜀박질조차 두려워 손에 들고 뛰던 하굣길이었다.

잎 새 뒤에 숨어 숨어 우는 산딸기
지나가던 나그네가 보았습니다.
딸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갑니다.

어디선가 아이들의 합창 소리가 들려 문득 고개를 들면
모두 징검다리에 걸터앉아 도랑물에 발을 담근 채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풀어놓은 책 보따리 곁으로
그들 뒤에는 검정고무신이 올망졸망 줄을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