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팔자도 더럽고 오지랖도 넓지
인생사 더운 날씨만큼이나 헐떡이는 놈에게
내 주위엔 왜 불쌍하고 어려운 년 놈들만 붙는지.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아졌다.
입은 옷 그대로 통기타만을 달랑 메곤 산사에 찾아들었다.
산사랄 것도 없는 아주 작은 암자지만, 인연이 제법 오래됐다.
스님께 인사드리고 법당 안에 들어가 예를 올리자마자
훌러덩 벗고 팬티차림으로 개울물에 몸부터 담갔다.
뼈 속까지 짜릿한 통증을 느낄 정도로 물은 차가웠다.
보살과 처사 내외, 스님과 내가 그날의 식구였다.
건방지게도 스님과의 겸상을 그적부터 해온 터라
검은 비닐봉지에 싸들고 온 곡차부터 꺼내놓곤 불문곡직 한잔 따라드렸다.
스님은 그날따라 말씀이 없으셨다. 묵언수행 군번도 아닐 텐데....
관객 셋을 평상에 앉혀놓고 라이브를 했다.
유달리 이연실의 찔레꽃을 좋아하시는 스님을 위해 첫 곡으로 불러드렸다.
그 어느 적엔가 거나해진 곡차의 위력을 내세워 배호의 파도를 부르시던 스님....
한적한 산속이라 그런지 나의 노래 소리는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믹서기에 장착된 리벌버가 따로 필요 없을 만큼 완벽한 시스템이었다.
쥬라기의 지대....
하늘에서는 별빛의 은총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다음날, 목 줄기로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기척에 눈을 떠보니
사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암자는 텅 비어 있었다.
속이 쩌르르한 약수를 한 바가지 퍼마시곤 어제의 팬티 뺘숑으로 다시 풍덩했다.
모두 어디들 가셨을까?....
암자 바로 뒤 쪽에 자리 잡은 텃밭에서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열대야 속에서, 그 한낮의 폭양 아래에서 호미로 무언가를 열심히 갈구고 있었다.
옷을 차려입고 다가가자 스님은 아무 말 없이 호미 하나를 그저 내 앞으로 툭 던지셨다.
몇 시간을 따라했을까?....
땀으로 범벅이 된 옷이 오히려 마르기 시작할 정도였으니....
나중엔 더운지도 모르겠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작업을 끝내자 몹시 시장했다.
깻 닢에 상추쌈과 된장과 풋고추, 오이냉국으로 먹는 공양은 천하진미였다.
평상에서 차를 마실 때, 스님은 비로소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문을 여셨다.
" 청일거사, 어제와 오늘의 희노애락은 다 거짓이었어."
" ?...."
" 그리구.... 어제와 오늘의 희노애락은 다 진실이었지. "
" ??.... "
마지막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처사님의 경운기를 타고 내려오면서도
아니 지금까지도 나는 아직 스님이 던져준 그 화두를 이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