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낡은 수첩
유년시절의 낮달
시인 김상훈
2007. 7. 9. 23:42
동지섣달 긴긴밤
타관의 허연 빗물에
할머니는 허리를 꺾으며
우리의 가난을 밟고 계셨다.
전깃불이 돈 먹는 벌레라며
호롱불 촛불에 밤새 실눈 뜨고
부엌도 없는 찌그러진 단칸방에서
가난의 노을 한 아름 안고 계셨다.
마실 다녀오는 길목에서
곧잘 주워오는 희망이라는 돌멩이
마당 한 켠에 쌓이는 세월만큼
바느질 품삯은 더디기만 하였다.
잔잔한 주름 흰 머리카락
이젠 들러리가 된 젊음
날마다 엮어 빚던 꿈들을
무지개처럼 안고 계셨다.
* 갓난아이 때부터 대학생이 되기까지
할머니의 품에서 자라난 저는
지금도 할머니만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